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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12일 연중 제32주간 월요일

11월12일 [연중 제32주간 월요일] <인간에게만 베푸신 특혜, 자유의지> 가끔씩 일간지 사회면을 장식하는 희대의 끔직한 사건들을 접할 때 마다 드는 의문이 한 가지 있습니다. 왜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창조하실 때 착한 유전인자만 사용하시지 않으시고 저런 반인륜적인 사건이 발생하게 만드시는가? 인간을 창조하실 때 착하고 모범적이고 ‘품질 좋은’ 1등급 인간들만 규격품으로 창조하시지 않으셨을까? 왜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희대의 살인마들을 만드셔서 오늘 우리를 ‘맨붕’ 상태에 빠트리실까? 안 그래도 원죄를 지니고 태어났으므로 죄의 유혹에 쉽게 휘둘리는 것이 우리 인간 존재입니다. 비록 자주 선을 인식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악을 되풀이합니다. 고상하고 가치 있는 대상을 선택해야한다고 마음먹지만 삶은 바닥을 헤맵니다. 이성이 감각에 굴복하고 사랑이 이기주의에, 겸손이 자만에 압도당합니다. 나약한 인간존재의 한계를 절실히 느낄 때 마다 차라리 하느님께서 우리 인간에게서 그런 악한 유전인자들을 쏙 빼버리셨으면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물론 전지전능하신 하느님이시기에 우리 인간을 창조하실 때 당신 설계도에 따라 자유의지가 없는 피조물로 창조하실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그것을 원치 않으셨습니다. 그 어떤 피조물보다도 우리 인간을 존중하고 사랑한다는 표시로 자유의지와 이성과 자기결정권을 선물로 주신 것입니다. 오직 우리 인간에게만 자유의지와 이성과 자기 결정권을 베푸셨는데 이는 우리 인간에게만 베푸신 특혜요 총애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하느님께서는 오직 우리 인간에게만 고유한 품성과 위엄을 선사하신 것입니다. 만일 하느님께서 우리 인간을 창조하시면서 자유의지와 이성과 자기 결정권을 빼버리셨다면 우리 역시 본능과 생존욕구, 번식 욕구에 따라 살아가는 어류, 파충류와 다를 바가 무엇이겠습니까? 우리 인간 각자의 구원과 저주, 영원한 생명과 영원한 죽음은 절대로 미리 예정되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하도록 우리 인간 각자의 자유의지에 맡겨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인간 각자가 하느님의 초대 앞에 어떻게 처신하는가 여부가 그렇게 중요한 것입니다. 하느님의 강렬한 구원의지 앞에 우리 인간 각자의 적극성과 열린 마음이 정말이지 중요한 것입니다. 여러 가지 많은 죄 중에 ‘죽었다 깨어나도 용서 못하는 죄’도 꽤나 큰 죄입니다. 누군가를 평생토록 누군가를 용서 못하고 가슴에 품고 살아가는 것은 죄에 앞서 스스로에게 상처를 주고 스스로를 갉아먹는 안타까운 일입니다. 우리가 체험을 통해서 잘 파악하고 있듯이 용서 없이 내적인 평화는 불가능합니다. 용서 없이 하느님 체험도 요원합니다. 용서 없이 진정한 구원도 없습니다. 이런 우리 인간의 현실을 잘 헤아리고 계셨던 예수님이셨기에 아주 강력한 권고 말씀을 건네신 것입니다. “네 형제가 죄를 짓거든 꾸짖고, 회개하거든 용서하여라. 그가 너에게 하루에도 일곱 번 죄를 짓고 일곱 번 돌아와 ‘회개합니다.’ 하면 용서해 주어야 한다.” 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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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백광열

등록일2018-11-12

조회수6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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