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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10일 사순 제1주일

3월10일 [사순 제1주일] 신명기 26,4-10 로마 10,8-13 루카 4,1-13 <훈련소로서의 광야> 언젠가 성지 순례 때 잠시나마 광야 이곳저곳을 걸어 다닌 적이 있습니다. 즉시 다가온 느낌은 황량함이요 삭막함이었습니다. 광야 한 가운데 서서 아무리 둘러봐도 제대로 된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머무를 곳도 쉬어갈 곳도 없는 불모지, 뱀과 전갈만이 위협하는 고통과 죽음의 땅이 광야입니다. 이런 광야를 좋아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사랑이신 하느님께서는 가끔씩 당신이 사랑하는 자녀일수록 더 자주 광야로 몰아넣으십니다. 우리가 원치도 않는 쓰디쓴 광야를 체험케 하시는데 그 이유를 도무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이 사순시기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중차대한 과제 중에 하나가 ‘광야’에 대한 의미부여 작업입니다. 선택된 민족 이스라엘 백성들도 예외 없이 40년간의 광야체험을 거쳐야 했습니다. 그들이 걸어야 했던 광야는 어떤 곳이었습니까? 한 마디로 말해서 황무지였습니다. 물이나 초목, 생물체라고 눈을 씻고 봐도 찾아볼 수 없는 것, 텅 빈 곳, 그저 척박한 땅과 높은 하늘만 끝도 없이 계속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뿐인가요? 시시각각으로 기후가 변하는 곳, 때로 뜨거운 태양의 열기나 무지막지한 광풍으로 정신이 혼미해지는 곳, 우리의 미성숙, 거짓신앙, 값싼 신앙, 유아기적 신앙이 낱낱이 드러나는 곳 한 마디로 고통스러운 곳이 광야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모든 것이 결핍된 장소, 우리 각자의 맨얼굴과 인간적 한계를 명확하게 들여다볼 수 있는 장소, 생각과 마음이 단순화되는 장소, 하느님께 더욱 절박하게 매달리는 장소가 광야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렇게 때로는 고통의 장소, 때로는 은총의 장소인 광야를 40년 동안 걸어가면서 자신들의 신앙 안에서 그릇된 요소들을 정화시켜나갔습니다. 우상숭배에서 유일신이신 하느님께로 돌아섰습니다. 형식적인 신앙, 위선적인 신앙에서 진실하고 견고한 신앙으로 변모시켜나갔습니다. 그래서 결국 약속의 땅에 입국하기에 합당한 신앙공동체로 거듭 태어난 것입니다. 우리 각자를 극진히 사랑하시는 하느님께서는 오늘 우리에게도 광야를 걷게 하십니다. 어떻게 보면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이 하나의 광야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한 세상, 그 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어찌 그리도 숱한 위험요소들과 다양한 고통과 시련으로 가득한지 모릅니다. 우리 각자의 인생 하나하나가 또 다른 의미의 광야가 분명합니다. 때로 지루하고 때로 고통스런 광야 여정을 걸어가고 있는 우리가 반드시 기억할 진리가 하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 40년간의 광야생활은 그들의 신앙을 한 단계 성숙시키고 쇄신시키기 위해 하느님께서 건설하신 ‘훈련소’였습니다. 훈련병이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40년간 하루도 빠지지 않고 고된 훈련을 이수함으로써 하루하루 자신들의 신앙을 업그레이드시켜나갔으며 그 지긋지긋한 우상숭배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우리 역시 고통의 바다 같은 이 세상 광야를 걷습니다. 40년, 80년, 100년...모든 것이 결핍된 이 광야를 걸어가면서 우리가 취해야 할 가장 중요한 삶의 태도가 무엇인가 생각해봅니다. ‘반면교사’라고 이스라엘 백성들의 실수를 통해서 우리는 잘 배울 수 있습니다. 그들 중에 많은 이들이 불평불만을 계속하다가 그길로 광야생활을 접었습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삶의 태도는 다양한 현실의 결핍 속에서도 불평불만하지 않는 것입니다. 집 떠나 여행하다보면 불편한 것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그러니 어떻게 해서든 불편함과 부족함을 당연시 여기는 것입니다.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순순히 받아들이는 것, 아주 작은 것에 만족할 줄 아는 것, 이런 노력들이 바로 광야를 걷는 우리에게 중요한 태도입니다. 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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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백광열

등록일2019-03-10

조회수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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