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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

박해시기교우촌들

원머리 지역 신앙 교우촌

원머리 지역 신앙 교우촌


원머리지역 교우촌은 내포지방의 교우들이 박해를 피해 오지라고 생각했던 이곳(아산만의 물줄기와 삽교천 하부의 물줄기가 만나는 곳이며 당시 밀물이 들어오면 사방이 바닷물로 둘러싸여 자연적인 섬이 형성되었다. 따라서 주로 염전을 일구며 살아 온 이곳은 피난지로서의 천해의 요지였다.)으로 많은 교우들이 피난 오면서 형성된 교우촌들이다.


현재 이곳은 제방과 뚝이 쌓이면서 논들과 밭들이 형성되어 과거의 역사를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세 개의 공소(한정, 매산, 음섬)뿐인데 그 역사는 원머리(한정리)공소 140주년, 매산공소 120주년, 음섬공소 100주년 되지만 공소가 설립되기 전 얼마나 많은 교우들이 이곳에서 박해를 피해 살아왔는지를 잘 알 수 있는 유서 깊은 교우촌들이다. 지금도 이 지역을 살펴보면 공소 앞에까지 바닷물이 들어 온 갯벌과 염전 지역임을 잘 알 수 있다.



또 여기에 20분의 순교자가 병인대박해 때부터 3년에 걸쳐 잡혀 치명 당하셨는데 그 중 두 분의 유해가 현재 원머리 성지에 안치되어 있다. 이런 유서 깊은 신앙 교우촌이기에 그 후손들 중 12분의 신부와 12분의 수도자가 현재 배출되셨는데 이곳과 연결된 후손들의 성직자와 수도자들을 찾으면 더 많다.



지금 현재 눈으로 보아 남은 것은 공소의 허름한 건물뿐이지만 하느님과 진리를 위해 생명을 바쳐 신앙을 증거한 장한 순교자들과 이런 오지에서 오랫동안 오고가는 사람 없이 황량한 바다 바람과 관아의 눈을 피해 살아온 무명 교우들은 시대의 한파와 변화 속에서 묻혀 오다가 2015년 8월 교황님의 방문과 성지에 대한 열정으로 서서히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이 역사가 깊은 교우촌들과 원머리 성지를 순례함으로써 많은 순례자들이 순교자들의 믿음과 교우촌 신자들의 신앙을 본받고 많은 은혜를 받아 가시길 바란다. 박해 시대 최초의 교우촌들 중 하나인 뿌리 깊은 신앙의 중심지인 이곳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