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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29일 상탄 팔일 축제 내 제5일

12월29일 [성탄 팔일 축제 내 제5일] 독서 : 요한 1서 2장 3~11절 <우리 마음속에서 메아리치는 그 계명과 가르침에 순종해 봅시다.> 오늘 독서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써 보내는 것은 새 계명이 아니라, 여러분이 처음부터 지녀 온 계명입니다.” 이 말씀에 머무르다가 몇 달 전에 신학생들이 만든 교지에서 읽은 손광배 신부님의 글이 생각났는데요. 그 내용을 옮겨 보면 이렇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삶은 사제의 삶이다.’ 라는 말씀을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부터 들어왔다. 아버지께서는 자주 팔남매를 한자리에 앉혀 놓고 성소의 소중함에 대해 말씀해 주셨다. 순교자 집안이면서도 자식 중에 성소자가 나오지 않은 것에 대해 늘 아쉬워하셨다. 이러한 이유로 초등학교 복사 할 때, 나는 커서 신부님이 되겠다고 말하곤 했다. 그러나 진로를 결정해야 하는 시기가 되자 마음이 바뀌었다. 독신으로 평생을 사는 것이 ‘죽음’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군대에 입대한 후 전차 사격장 조교가 되었다. 조교가 되어 교육지원 올라간 첫날 사고가 났다. ‘사격대기’ 라는 무전을 사격하라는 명령으로 오인해 많은 사람이 다쳤다. 신음소리와 피범벅,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그 다음날 교육지원 올라가는데 두려움에 떨었다. 오늘 내가 살아 내려 올 수 있을까? 계속되는 죽음에 대한 공포 때문에 모든 것이 허무해졌다. 죽으면 모든 것이 끝장이었다. 돈도, 명예도, 여자도... 지금 죽는다 해도 허무하지 않은 삶은 무엇일까? 여렸을 때부터 해 주신던 아버지의 말씀이 귓가에 울렸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삶은 사제의 삶이다.’ 나는 사제가 되기로 결심했다. 그 순간 마음 깊은 곳에서 기쁨과 위로가 올라왔다. 하느님께서 나를 부르고 계셨던 것이다. 그리고 꿈에 그리던 신학교에 입학했다. 시간이 지나고 학부 4학년을 마친 겨울방학에 강원도 고한성당에 한 달간 있게 되었다. 탄광촌의 어려움을 체험해 보라는 본당신부님의 배려에서였다. 그때 홍익대 미대 학생 10여명은 탄광촌의 어두운 분위기를 산뜻하게 바꾸기 위해 성당 담 전체에 그림 작업을 했다. 나는 낮 시간 동안 탄광촌의 어려운 가정을 방문했고, 저녁에는 그림을 그리는 학생들과 친교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학생들은 신자는 아니었지만 본당 신부님을 무척 존경했다. 본당 신부님을 존경하는 학생들은 신부가 되기 위해 준비하는 신학생이라는 이유만으로 나에게 호감을 보였다. 우리들은 쉽게 친숙해졌다. 그 중 한 여학생과 특별히 가까워지게 되었다. 호감은 사랑으로 바뀌었고, 휘발유를 끼얹은 것처럼 불타올랐다. 그 여학생과 함께라면 행복할 수 있다는 확신이 생겼다. 그림 작업이 끝나자 미대학생들이 떠났다. 이틀 후면 나도 집으로 돌아간다. 내가 돌아가면 우리의 미래를 좀 더 진지하게 이야기하고자 했다. 성소에 대한 열정은 이미 사그라들어 가물거리고 있었다. 삶의 방향을 바꾸어야겠다고 결심했다. 집에 돌아가면 부모님, 신부님, 성소국장 신부님께 드릴 ‘성소포기’ 멘트까지도 준비가 끝났다. 장미 빛 미래에 취해 있는 동안 어느덧 기차는 집 근처에 다다랐다. 멀리서 집이 보이는데 대문에 등이 걸려있었고 평소와는 다른 분위기였다. 동네 친구 하나가 나와 마주쳤는데 “아버지가 편찮으시면 집에 붙어 있어야지 어디를 쏘다녀” 라며 거칠게 소리쳤다. 아버지께서 한 시간 전에 임종하신 것이다. 암으로 투병중이셨지만 그렇게 빨리 돌아가실 줄은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다. 정신없이 초상을 치르고 삼우미사를 봉헌했다. 텅 빈 방안에 홀로 앉아 영정을 바라보았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삶은 사제의 삶이다.” 라는 아버지의 음성이 들려왔다. 군대에서 들려왔던 그 음성이었다. 며칠 후 편지 한통이 배달되었다. 고한성당에서 만났던 여학생의 글이었다. 그래서 나는 정중하게 “우리의 만남을 아름다운 추억으로 간직하자..”는 짧고도 단호한 내용의 답글을 보냈다. 모든 것이 정리되자 성소에 대한 기쁨과 위로가 올라왔다. 하느님께서는 아버지의 죽음을 통해 내 소중한 성소를 지켜 주신 것이었다.】 손광배 신부님의 삶을 만들어주고 이끌어준 것은 어떤 새로운 깨달음이 아닙니다.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께 들은 말씀, 곧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삶은 사제의 삶이다.’ 라는 말씀입니다. 그 한 마디가 고비마다 신부님을 붙잡아 주고 이끌어주었고, 신부님을 사제로 만들었고 사제로 살아가도록 해 준 것 같습니다. 우리를 신앙인으로 만들어 주는 것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우리가 처음 들었던 그 계명과 말씀이 우리 마음 안에서 끊임없이 울리고 메아리치며 우리 삶을 만들어 나가는 것 같습니다. 공동체 안에서 미운 사람이 생길 때마다 마음속에서 ‘사랑해라.. 용서해라..’ 라는 목소리가 들려오고, 성당 일이 귀찮게 여겨질 때 ‘봉사하고 섬겨라..’ 라는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또 티비 앞에만 있는 자신을 바라볼 때도 ‘기도하고 고요하게 하느님 앞에 머물러라...’ 라는 목소리가 마음속에서 들려옵니다. 그 가르침들은 우리가 처음부터 들어서 알고 있던 것이고, 그 가르침에 충실할 수 있을 때 우리의 삶이 좀 더 신앙인다워지고 성숙해 질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오늘 하루, 내가 알고 있는 그 계명과 가르침이 마음 깊은 곳에서 밀려올 때 그 목소리를 외면하지 말고 그 목소리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봅시다. 즐거운 하루 되세요~^^ 자매님들과 커피를 마시다가 예전 신부님 얘기가 나왔다. “그 신부님은 키도 크시고 수단이 길어보이잖아...” 그 이야기를 듣고 그 신부님의 수단이 그렇게 길지 않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지 이런 이야기를 했다. "길어봐야 단추 하나 차이에요. 180 이상은 23개.. 170 이상은 22개.. 그리고 160이상은 21개에요” 인천교구 김기현 요한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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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백광열

등록일2018-12-29

조회수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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