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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18일 사순 제2주간 월요일

3월18일 [사순 제2주간 월요일]

다니엘 9,4ㄴ-10
루카 6,36-38

"흘러넘치도록 주님 자비를 받은 여러분, 자비의 사도가 되십시오!"

언젠가 제가 피정 중에 제 인생을 깊이 들여다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때 불현듯 이런 생각이 제 머릿속에 떠오르더군요.

‘내 인생, 어쩌면 이렇게 꼬이고 꼬였는가?
왜 이다지도 부끄럽게 살아가고 있는가?
행동 하나 하나 왜 이렇게 한심한가?

왜 나는 오늘도 수십년 전의 악습을 아직도 되풀이하고 있는가?
어디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숨고 싶다.
이런 나를 하느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실까?
나 같은 사람에게도 구원은 가능한가?’

그런데 열심히 피정한 결과였던지, 피정을 끝내고 돌아오는 길에는 그런 생각들이 많이 사라졌습니다.

그 계기는?
그간 제가 지니고 있었던, 그릇된 하느님 상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 이루어지고 난 시점부터였습니다.

오랜 세월 저는 하느님을 정의로우신 분, 심판하시고 벌주시는 분으로 여겨왔습니다.
나같은 하찮은 인간, 대죄인과는 상종조차 하지 않으시는 분, 가까이하기에 너무나 먼 당신으로 생각해왔습니다.

그런데 피정 기간 내내, 마음 독하게 먹고, 성경을 읽고 또 읽고, 묵상하고 또 묵상하다보니, ‘그게 아니었구나.’ ‘내가 하느님을 잘못 생각하고 있었구나.’하는 깨달음이 다가오더군요.

신구약성경 전체는 자비하신 하느님 사랑의 역사를 엮은 책입니다.
성경 한 구절 한 구절은 자비하신 하느님의 얼굴을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특히 루카 복음서 안에는 우리 인간을 향한 하느님의 자비가 손에 잡힐 듯이 잘 묘사되어 있습니다.
루카 복음서를 천천히 읽고 묵상하다보면 우리 죄인들을 따뜻이 어루만지시는 하느님의 뜨거운 자비의 손길을 생생히 느낄 수가 있습니다.

세리 레위를 제자로 부르시는 장면, 죽었던 과부의 외아들을 소생시키는 장면, 죄많은 여인을 용서하시는 장면, 안식일에 등굽은 여인을 치유하시는 장면, 되찾은 아들의 비유, 자캐오와 친구를 맺는 장면...
한 대목 한 대목 읽다보면, 하느님께서 얼마나 자비로우신 분인지를 온 몸과 마음으로 절절히 느낄 수 있습니다.

하느님 아버지의 자비가 얼마나 큰 것인지 가장 잘 알고 계셨던 예수님이셨기에, 확신에 찬 강한 어조로 우리를 자비의 사도가 되라고 초대하십니다.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
주어라. 그러면 너희도 받을 것이다. 누르고 흔들어서 넘치도록 후하게 되어
너희 품에 담아주실 것이다.”(루카 복음 6장 36절, 38절)

언젠가 우리 모두 이 세상을 떠나 하느님 대전에 나아갈텐데, 그 때 거기 가서 깜짝 놀랄 일 세가지가 있다고 합니다.

첫번째 놀랄 일은?
이 점 때문에 늘 불안했었는데, 늘 노심초사했었는데, 늘 걱정했었는데, 늘 그게 가능할까 했었는데, 내가 딱 천국에 와있다는 것, 그것 때문에 깜짝 놀란다고 합니다.

두번째 놀랄 일은?
그 동안 신부님들이나 수녀님들, 교리교사들을 통해서 천국이 얼마나 아름답고 대단한 곳인지는 잘 알고 있었는데, 그런데 막상 와보니 그런 설명보다 몇 천배, 몇 만배 더 아름답고, 더 감동적고, 더 장관이어서 또 깜짝 놀란다는 것입니다.

세번째 놀랄 일은?
천국에 오게 된 기쁜 마음을 겨우 달래며, 천국의 정원을 산책하고 있는데, 몇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은 상식선에서 여기 와서는 도저히 안될 ‘그분들’이 떡하니 와계셔서, 또 깜짝 놀란다는 것입니다.

평생토록 괴롭혔던 시어머님도 와계시고, 그 돈이 어떤 돈인데, 그 돈을 떼먹고 달아난 막달레나씨도 거기 와 계시고, 악연 중의 악연이었던 직장 상사도 거기 와 계시고...

농담같지만 진담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만큼 하느님의 자비는 큽니다.
오늘날 우리 교회는 한 개인의 구원도 중요시 여기지만, 공동체적 구원도 크게 강조합니다.

함께 동고동락하며 동시대를 살았던 사람들, 미운 정 고운정 다 들었던 사람들, 우리 모두 나약한 존재들이기에 어쩔 수 없이 상처를 주고받았던 사람들, 그 사람들은 다 제외되고 나만 딱 천국에 와있으면, 그 구원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자비하신 하느님 눈에는 나도 구원의 대상이지만, 지지리도 못나 보이고, 결점 투성이인 이웃들, 달라도 너무나 다른 그들도 구원의 대상임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오늘도 나와 너무나 다른 그들을 위해 기도하려는 노력, 그들과 화해하려는 노력, 그들과 다시 한번 새롭게 시작하려는 노력을
되풀이해야겠습니다.

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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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백광열

등록일2019-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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